카테고리 보관물: 수필

군고구마

얼마 전에 길을 가고 있는데 무엇인가 타는 냄새가 났다. 주위를 둘러보니 드럼통을 개조하여 만든 군고구마 통의 연통에서 나오는 연기의 냄새였다. 겨울이라고 하기에는 이른 때 였는데 그 모습을 보니 문득 예전에 군고구마 생각이 떠올랐다.

군고구마는 겨울에만 먹을 수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고구마만 구워 먹으려고 따로 불을 땔 수는 없었다. 마땅히 불을 때어 구워먹을 만한 곳도 없었다. 내가 고구마를 직접 수확했던 기억은 없었다. 하지만 겨울이 되면 고구마를 수확하여 얼지 않도록 자루에 넣어 윗방 의 온기가 잘 들지 않는 한쪽에 놓아두었던 것은 분명히 기억이 난다. 가끔 한 두개씩 꺼내어 칼로 껍질을 깍아 먹거나 가마솥에 쪄서 먹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맛있게 먹는 방법은 아궁이에 구워먹는 군 고구마였다.

아궁이에 저녁을 지으면서 불을 때고 맨 마지막에 뚝배기에 담긴 찌개를 끓였다. 고구마를 먹을 만큼 미리 준비했다가 찌개를 끓이고 나면 열기가 남은 아궁이에 묻어 두었다. 저녁을 먹고 할머니께서 숭늉을 가지고 오실 때쯤 이면 부엌에서 맛있는 고구마 냄새가 났다.

불 막대기로 사그라진 재를 조심스럽게 걷어내면 맛있게 익은 군 고구마를 먹을 수 있었다. 아궁이 앞에 앉아 뜨거운 고구마의 껍질을 조심조심 벗겨내어 먹으면 참 맛있었다. 빨리 먹고 싶은 마음에 미리 꺼내면 제대로 익지 않아 맛이 없거나 텔레비전을 보느라 고구마를 묻어놓은 것을 잊고 있다가 다음날 아침에야 생각나는 경우도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적당히 맛있게 아궁이에 묻어 익히는 것도 일종의 기술이었던 것 같다.

어느날 부엌에 할아버지와 나란히 앉아 불을 때면서 군 고구마에 관한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난 그냥 아궁이에 묻어만 놓으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할아버지의 말씀은 그게 아니었다. 일단 마른 솔가지를 땐 곳에는 화력이 부족해서 잘 익지 않는다고 하셨다. 그럼 장작불을 때고 남은 아궁이에는 잘 구워지지 않냐고 여쭈어 보았더니 고개를 저으셨다. 어째서 그런지 여쭈어 보았더니 장작불은 너무 화력이 강해서 모두 타버려 맛이 없다고 하셨다. 그럼 어떻게 구워야 되는지 다시 여쭈어 보았더니 볏짚을 충분히 땐 곳에 묻어야 적당히 익어 맛이 좋다고 말씀하셨다. 그러시면서 고구마와 볏짚을 가져오라고 말씀하셨다.

윗방에 가서 맛있게 생긴 고구마를 가져오고 마당 한쪽에 쌓여 있는 볏단 중 안쪽에 눈을 맞지 않은 볏짚을 부엌으로 가져왔다. 할아버지께서는 일단 고구마를 아궁이에 넣고 볏짚을 때기 시작하셨다. 볏짚을 꽤 많이 때시는 것 같았지만 때고 나면 금방 사그라져서 고구마가 잘 익을 것 같지 않았다. 저녁을 먹고 볏짚을 땐 아궁이를 보니 타고 남은 재가 소복하게 쌓여 있었다. 불 막대기로 헤쳐서 고구마를 꺼내보니 정말 적당히 익어 아주 맛이 좋았다. 군 고구마를 셀 수 없이 구워먹었지만 다른 것은 기억이 잘 나지 않고 할아버지께서볏짚을 때면서 구워주셨던 그 군 고구마는 바로 어제의 일처럼 기억이 난다.

아마 앞으로는 그런 방법으로 군 고구마를 구워먹을 수는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손자를 생각하는 할아버지의 마음과 그 마음만큼이나 따뜻한 부엌 아궁이의 열기를 느꼈던 기억을 잊지 않아 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추운 겨울이면 더욱 생각나는 그 때의 기억이다.

호떡

얼마 전 시장 옆을 지나가다 우연히 호떡을 구워 팔고 있는 가게를 보고 어릴 적 호떡을 먹던 생각도 나고 배도 고프고 하여 사먹게 되었다. 따뜻한 호떡을 먹으며 주인 아주머니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어릴 적 추억에 잠겼다.

호떡은 내 기억으로는 쉽게 먹을 수 있던 것은 아니었다. 아마 할머니께서 자주 해 주시지 못한 것 같다. 더운 여름에는 만들기가 어려웠을 것 같고 늦가을이나 겨울에 해 주신 것으로 기억한다. 밀가루를 반죽하여 오래된 양은 그릇에 담아 놓으면 언제 먹을 수 있냐고 계속 할머니께 물었던 것 같다. 평소에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정말 좋아 했었던 기억이 난다. 요즘 만들어 파는 여러 가지 재료가 들어 있는 호떡과 다르게 그 당시에는 별다르게 첨가하는 것은 없었다. 단지 흑설탕이 전부였다. 단맛이 나는 것은 흑설탕이 전부라고 알고 있던 나는 그저 즐거운 마음뿐이었다. 하얀 설탕이 있다는 사실 자체도 몰랐었다.

굽는 도구도 따로 없었다. 오래 전에 사 놓은 일년에 몇 번 쓸까 말까 하는 까만 프라이팬에 언제 사 놓은지 모르는 오래된 식용유를 두르고 어쩌다 특별한 날에만 사용하는 곤로에 올려놓고 적당한 크기로 반죽을 떼어내어 숟가락으로 흑설탕을 얹어 조물조물 매만진 뒤 올려놓으면 그만 이었다. 동그란 호떡 반죽을 올려놓고 밑이 평평한 쇠 그릇으로 꾹 눌러서 납작한 모양을 만들고 앞뒤로 충분히 익으면 맛있는 호떡이 완성되었다. 할머니께서는 그 뜨거운 호떡을 맨손으로 재빠르게 뒤집으셨다. 반대편면이 익으면 바로 주셨지만 너무 뜨거워서 바로 먹지는 못하고 서투른 젓가락질로 바깥쪽부터 먹기 시작하였다. 어느 정도 식으면 본격적으로 손에 쥐고 먹는데 급히 먹다 안에 들어있는 뜨거운 흑설탕 물에 입을 데이곤 하였다. 먹을 것이 그리 많지 않았던 터라 정말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난다. 할머니의 정성이 그 맛을 더한 것은 분명한 일이었다. 할머니께서는 다음 호떡을 기다리는 나에게 흑설탕을 한 숟가락씩 먹여 주시곤 하셨다. 흑설탕 또한 쉽게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정말 좋았었다.

지금 사 먹고 있는 것은 여러 가지 재료가 들어가 있어 옛날의 호떡보다 분명히 맛이 있을것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옛날의 그 호떡과는 말할 수 없는 그 무언가가 달랐다.

시간이 흘러 여러가지 인위적이고 획일적인 맛에 길들여진 내가 다시는 맛볼 수 없는 맛. 하지만 어렴풋하게 부뚜막에 손자와 나란히 앉아 손자를 위해 호떡을 구워주시던 할머니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는 소중한 기억인 것 같다. 지금도 눈을 감으면 그 모습이 떠오른다.

추운 겨울 차가운 마음에 따뜻한 그 당시의 할머니의 마음을 호떡을 통하여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