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보관물: 수필

까마중

얼마 전 봉숭아를 심어 놓은 화분을 정리하려고 하는데 웬 잡초가 자라고 있었다. 그냥 뽑아서 버리려고 하는데 가만히 살펴보니 잡초가 아니라 까마중 이었다. 나도 모르게 입가에 웃음이 번졌다. 도시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어떻게 집 앞에 있는 화분에서 자라날 수 있는지 신기할 따름이었다.

자세히 보니 검게 익어서 먹을 수 있는 것도 있고 아직 푸른 열매도 있었다. 거기에 앙증맞은 꽃까지 피어 있었다. 정말 오래 전에 본 데다가 어렸을 적에는 열매만 따 먹느라 꽃의 모양까지는 기억을 하지 못했다. 그런데 꽃이 핀 모습을 보니 생각외로 소박한 아름다움이 있었다. 하얀 꽃잎에 노란 가운데 부분이 어우러져 예쁜 모양이었다.

어렸을 적에는 산과 들을 돌아다니다 까마중이 있으면 익은 열매를 정신없이 따먹기 바빴다. 열매의 크기는 장난감 총에 들어가는 둥근 플라스틱 총알과 비슷한데 까맣게 익은 열매를 따서 먹어보면 입안에서 터지면서 독특한 향과 맛을 느낄 수 있다. 열매가 너무 익으면 손으로 따다가 터져버리기도 하였다.

인터넷을 통해 자료를 찾아보니 한약재로 쓰이기도 하는데 독성이 있다고 한다. 독성이 있다는 것에 좀 놀라기는 했지만 어차피 한번에 많이 먹지는 못했기 때문에 크게 영향을 주지는 않는 것 같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실제 익어서 먹을 수 있는 열매의 수는 얼마 되지 않았던 것 같다.

요즈음은 까마중을 도심에서 보기도 어렵지만 열매의 독특한 맛을 느껴보기는 더욱 어렵다.

집 앞의 화분에 까마중이 홀연히 자라서 보게 된 행운으로 아득한 어린시절을 짧게나마 더듬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감자 물레방아

어렸을 적 비가 많이 오는 장마철이면 감자 물레방아를 만들곤 했다. 내가 살던 곳 바로 뒤에 산이 있었는데 평소에는 물이 없지만 비가 많이 오면 산으로부터 물이 흘러 내려와 그곳에 물레방아를 만들어 놓았다. 비가 계속오지 않으면 길어야 하루정도 돌아갔던 것으로 기억한다. 정확한 명칭은 기억 나지 않지만 감자를 이용해서 만드는 것이라 감자 물레방아라고 이름 지어 보았다. 물론 감자로만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감자를 대치할 수 있는 것이라면 어떤 것 이라도 가능하다. 그리고 버린지 오래되지 않은 조개 껍질이 필요하다.

먼저 헛간에서 큼지막한 감자를 가지고 나와 부엌에 가서 칼로 가장 굵은 부분을 남기고 양쪽을 자른다. 동그랗게 자른 감자를 가지고 두엄 옆에 있는 조개무지로 가서 적당한 크기의 조개 껍데기를 몇 개 줍는다. 감자에 조개 껍데기를 한 방향으로 일정하게 꽂아 물레방아 모양으로 만든다. 그런 다음 조개 껍데기를 꽂은 감자를 가지고 물이 흐르는 곳에 간다. 주위에 흩어져 있는 나뭇가지 중에 튼튼한 것을 골라 가운데를 관통시켜 축을 만든다. 그리고 양쪽에 지지대가 될 Y자 모양의 나뭇가지를 물이 흐르는 곳 양쪽에 꽂고 그 위에 감자 물레방아를 올려 놓으면 완성된다. 양쪽에 지지되는 나뭇가지를 적당한 높이로 꽂아야 적당한 속도로 물레방아가 회전하였다. 너무 높아서 조개껍데기가 물에 닿지 않기도 하고 너무 아래쪽에 놓아서 너무 빨리 돌아가기도 하였다.

물이 흐르는 힘 때문에 감자 물레방아가 앙증맞게 돌아가기 시작하면 그것을 한 없이 바라보던 기억이 난다. 이상하게도 오래 바라보고 있어도 전혀 싫증이 나지 않았다. 아마 항상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비가 많이 오고 물이 흐를 수 있는 조건이 되어야 가능했기에 만들고 바라볼 수 있는 것에 꽤 만족했던 모양이다.

비가 많이 오는 시기에 가끔 친구집에 놀러 갈 때면 집 근처에 물레방아를 만들어 놓은 것을 볼 수 있었다. 가만히 살펴보면 그 친구의 개성이 나타나곤 했었다. 나는 크기가 거의 같은 조개 껍데기를 꽂는데 반해 다른 친구는 크기와 모양이 전혀 다른 크고 작은 조개 껍데기를 꽂아 나름대로 재미있는 모양을 만들곤 했다. 물론 이것도 비가 많이 와야 그 친구도 만들 수 있는 것이었다. 또 한번에 여러 개를 만들어 놓아서 다른 모양의 물레방아가 돌아가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돌돌돌 소리를 내며 흐르는 물줄기에 소박하게 돌아가는 감자 물레방아를 바라볼 수 있었던 시절이 있어서 나에게는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아마 도시에서만 자랐다면 이런 물레방아를 만들 상상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작은 것에도 감사하고 소박하게 살던 그 시절의 마음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의문이다. 하지만 나에게 그런 순수한 시절의 기억을 되살려 주는 감자 물레방아가 있어 풍요한 물질에 찌든 나를 달래주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