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 물레방아

어렸을 적 비가 많이 오는 장마철이면 감자 물레방아를 만들곤 했다. 내가 살던 곳 바로 뒤에 산이 있었는데 평소에는 물이 없지만 비가 많이 오면 산으로부터 물이 흘러 내려와 그곳에 물레방아를 만들어 놓았다. 비가 계속오지 않으면 길어야 하루정도 돌아갔던 것으로 기억한다. 정확한 명칭은 기억 나지 않지만 감자를 이용해서 만드는 것이라 감자 물레방아라고 이름 지어 보았다. 물론 감자로만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감자를 대치할 수 있는 것이라면 어떤 것 이라도 가능하다. 그리고 버린지 오래되지 않은 조개 껍질이 필요하다.

먼저 헛간에서 큼지막한 감자를 가지고 나와 부엌에 가서 칼로 가장 굵은 부분을 남기고 양쪽을 자른다. 동그랗게 자른 감자를 가지고 두엄 옆에 있는 조개무지로 가서 적당한 크기의 조개 껍데기를 몇 개 줍는다. 감자에 조개 껍데기를 한 방향으로 일정하게 꽂아 물레방아 모양으로 만든다. 그런 다음 조개 껍데기를 꽂은 감자를 가지고 물이 흐르는 곳에 간다. 주위에 흩어져 있는 나뭇가지 중에 튼튼한 것을 골라 가운데를 관통시켜 축을 만든다. 그리고 양쪽에 지지대가 될 Y자 모양의 나뭇가지를 물이 흐르는 곳 양쪽에 꽂고 그 위에 감자 물레방아를 올려 놓으면 완성된다. 양쪽에 지지되는 나뭇가지를 적당한 높이로 꽂아야 적당한 속도로 물레방아가 회전하였다. 너무 높아서 조개껍데기가 물에 닿지 않기도 하고 너무 아래쪽에 놓아서 너무 빨리 돌아가기도 하였다.

물이 흐르는 힘 때문에 감자 물레방아가 앙증맞게 돌아가기 시작하면 그것을 한 없이 바라보던 기억이 난다. 이상하게도 오래 바라보고 있어도 전혀 싫증이 나지 않았다. 아마 항상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비가 많이 오고 물이 흐를 수 있는 조건이 되어야 가능했기에 만들고 바라볼 수 있는 것에 꽤 만족했던 모양이다.

비가 많이 오는 시기에 가끔 친구집에 놀러 갈 때면 집 근처에 물레방아를 만들어 놓은 것을 볼 수 있었다. 가만히 살펴보면 그 친구의 개성이 나타나곤 했었다. 나는 크기가 거의 같은 조개 껍데기를 꽂는데 반해 다른 친구는 크기와 모양이 전혀 다른 크고 작은 조개 껍데기를 꽂아 나름대로 재미있는 모양을 만들곤 했다. 물론 이것도 비가 많이 와야 그 친구도 만들 수 있는 것이었다. 또 한번에 여러 개를 만들어 놓아서 다른 모양의 물레방아가 돌아가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돌돌돌 소리를 내며 흐르는 물줄기에 소박하게 돌아가는 감자 물레방아를 바라볼 수 있었던 시절이 있어서 나에게는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아마 도시에서만 자랐다면 이런 물레방아를 만들 상상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작은 것에도 감사하고 소박하게 살던 그 시절의 마음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의문이다. 하지만 나에게 그런 순수한 시절의 기억을 되살려 주는 감자 물레방아가 있어 풍요한 물질에 찌든 나를 달래주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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