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보관물: 수필

목화

얼마 전 집에 돌아와 문을 열려고 하는데 작은 종이가 붙어 있었다. 넘쳐 나는 광고지 중에 하나라고 생각했는데 자세히 보니 솜을 틀어준다는 내용의 광고였다. ‘아직도 솜틀집이 있나…’ 라는 생각을 하면서 어렸을 적 목화에 대한 기억이 떠 올랐다.

요즈음은 목화를 보기가 정말 어려워졌다. 예전에는 이불을 만들 때 많이 필요해서 심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지금은 두꺼운 솜이불을 쓰는 집도 없고 그 솜을 틀어서 가지런히 해주던 솜틀집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내가 어렸을 적에 살던 곳에도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솜틀집도 시장에 단 한곳만 있었다. 내 기억으로는 집안에 혼사가 있는 경우에 이불을 만들어 가지고 가려고 목화를 재배하는 것 같았다.

목화하면 제일 먼저 떠 오르는 기억은 솜이 들어 있는 자주색의 동그란 부분을 따서 씹었던 일이다. 아직 자라지 않은 목화를 껌 대용으로 그랬던 모양인데 처음 씹을 때는 아린맛이 강했었다. 계속 질겅질겅 씹고 다니면서 놀았던 기억이 난다. 맛이 있어서 먹었던 것 같지는 않았다.

목화밭에 가보면 아직 피지 않은 것도 있고 하얗게 활짝 핀 목화도 있었다. 다른 것보다 특히 목화는 정말 신기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먹을 수 있는 것은 아닌데 그렇게 부드럽고 하얀 것이 키가 작은 나무에서 나온다는 것이 정말 신기하게 느껴졌다. 목화를 따다가 솜만 모아 놓아서는 그냥 사용할 수 없었다. 그 안에 동그란 씨가 섞여있어서 그것을 제거하고 검불 같은 것을 손으로 하나하나 골라내야만 그제서야 솜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목화씨를 제거하기 위해서는 씨아라는 도구를 이용하여 제거했는데 잘 쓰지 않아서 그런지 광 한켠에 보관되어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무거운 것은 아니었지만 어렸을 적에는 상당히 무겁게 느껴졌었다. 목화씨를 제거하는 원리는 간단한데 그때 당시에는 목화씨가 한쪽으로만 떨어지는 것이 정말 신기했다.

지금 생각하면 별 것 아니지만 어렸을 적에는 정말 신기한 도구였다. 씨아는 양쪽에 손잡이가 있고 가운데 동그란 막대기가 두개 놓여져 있다. 손잡이는 혼자서 돌리지 않고 두명이 돌렸던 것으로 기억된다. 손잡이를 돌리며 막대 사이의 좁은 틈에 솜을 밀어 넣으면 목화씨가 들어가는 쪽으로 걸리게 되어 밑에 받혀놓은 함지박에 떨어지게 된다. 다른 한쪽으로는 목화씨가 제거된 솜이 나오게 된다. 나는 씨아의 손잡이를 돌리다 힘이 들면 목화씨가 제거된 솜에 있는 검불을 제거하는 일을 했었다. 삐걱삐걱 소리를 내며 돌아가는 씨아가 마냥 신기했었다. 아마 지금은 박물관에나 가야 볼 수 있는 물건이 되었을 것이다.

목화와 씨아가 내 곁에서 하나하나 사라지는 것 중에 하나라고 생각되어 서글프지만 여러 가지 추억을 기억할 수 있어 마음의 위안이 된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밭 한쪽에 목화를 심어보고 싶다. 어릴 적 기억을 떠올리면서…

개암

내 기억으로는 개암이 영글어 먹을 수 있는 시기는 여름이 거의 끝나 갈 무렵이었다.

내 주위에는 개암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사람이 많다. 지역마다 부르는 이름이 다른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살던 곳에서는 개암이라고 하였다.

개암은 산에서 자라는 작은 나무의 열매인데 잎사귀 밑에 달려있고 꽃봉오리 모양으로 둘러싸여 있다. 겉 껍질을 도구 없이 입으로 벗겨냈는데 이 꽃봉오리 모양의 것을 벗겨낼 때는 시큼한 맛이 강해서 몸서리를 쳤던 기억이 난다. 그것을 벗겨내면 은행의 열매와 비슷하게 생긴 단단하고 하얀 껍질로 덮여있는 열매가 나온다.

이 열매를 다시 까서 안의 속살을 먹는 것이다. 그 맛이 정말로 고소하다. 크기가 작아 먹고 나면 부족한 느낌이 들어 많이 따먹게 되었다. 먹을 것이 많지 않은 시골에서는 참 맛있는 먹거리였다. 먹고 싶은 마음에 덜 영글은 것을 따서 깨보면 속이 차있지 않아 버리곤 했었다. 맛있는 열매를 먹으려면 영글을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내 기억으로는 맛있게 영글은 개암은 도토리처럼 동그랗고 덜 영글은 개암은 납작한 모양을 가지고 있었다. 동그란 모양의 개암을 골라 깨보면 맛있는 속살이 들어있었다. 모양의 겉 껍질과 같고 표면이 매끄럽고 색은 하얗다. 실제 먹을 수 있는 열매 속살은 작아서 꽤 많이 깨 먹어야 만족했었던 것 같다.

내가 언제부터 개암나무를 구별하고 개암을 따 먹었는지는 기억 나지 않는다. 산에 올라가 개암을 따 먹던 기억이 단편적으로 남아있을 뿐이다. 여름이 거의 끝나 갈 무렵 내가 살던 곳의 뒷산에 올라가 개암을 따먹던 기억이 난다. 아마도 할머니나 할아버지께서 뒷산 꼭대기에 있는 밭에 데리고 다니시면서 따 주셨을 것이다. 아니면 동네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면서 따 먹었을 것이다. 그것을 내가 기억하고 혼자서 따 먹으러 다니곤 했었을 것이다. 신기한 것은 개암나무가 있는 곳을 모두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개암 나무가 있는 위치에 따라서 열매가 영그는 시기가 달랐던 것으로 기억된다. 뒷산이 그리 높은 산은 아니었지만 인적이 없는 곳이라 혼자가면 가끔 무섭기도 하였지만 맛있는 개암을 먹으려는 욕구가 더 강해서 였는지 자주 올라갔었다. 지금의 나라면 한번에 많이 따와 집에서 먹는 방법을 택했겠지만 그 당시에는 산에서 먹을 만큼만 그 자리에서 먹고 바위에 앉아 마을을 내려보거나 돌들을 모아 쌓고 놀다 산을 내려왔다. 욕심 없는 순수한 아이의 마음이었기에 가능한 일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개암 나무를 마지막으로 본 것이 언제인지 모르겠다. 개암을 맛본 것은 더욱 오래되었다. 하지만 지금도 개암나무를 구별하고 그 열매를 까서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아마 시간이 많이 지나도 잊어버리지는 않을 것이다. 이상하게도 그런 생각이 든다. 앞으로 분명히 다시 개암나무에서 영글은 개암을 따서 즐겁게 먹을 수 있는 기회가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바위 위에서 개암을 까먹던 그 기억이 아직 남아있어 가끔씩 나를 미소 짓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