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치집

요즈음은 거의 집안의 행사를 근처의 뷔페나 커다란 식당에 예약을 하여 손님들을 초대하여 치르게 된다.

얼마 전에 친구 결혼식에 갔었는데 분위기 자체가 과거에 가본 결혼식과는 확연하게 차이가 났다. 장소도 색달랐고 제공해 준 음식도 양식이어서 좀 적응이 되지 않았다. 결혼식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어렸을 때 동네에서 잔치집에 다녔던 기억이 어렴풋하게 떠올랐다.

어렸을 적에 살았던 곳은 시골 마을이어서 잔치가 있으면 할머니께서 가셔서 음식 만드는 것을 도와주시곤 했다. 나는 그때마다 거의 빠지지 않고 따라 다녔던 것으로 기억한다. 삼촌이나 고모님께 여쭈어 보면 삼촌이나 고모님은 그런 잔치집에 데리고 간 적이 없으셨다고 말씀하셨다. 잔치 준비를 하는 집에 따라가서 할머니 옆에 있으면 음식을 만드시면서 입에 넣어 주셔서 배불리 먹었던 기억이 난다. 아마 먹을 것이 그리 넉넉하지는 않아서 그랬던 것 같다. 잔치집이 먼 곳은 데리고 가지 못하셨지만 가까운 곳에는 데리고 가서 꼭 많이 먹이려고 하셨던 것 같다. 할머니께서는 잔치전날 해가 저물 때까지 음식 만드는 것을 도와주셨던 것 같다. 내 기억으로는 동네의 거의 모든 집에서 도와주러 잔치집에 갔었던 것 같다.

잔치날이 되면 잔치상이 어른을 중심으로 차려졌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떻게 알고 모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대문 밖에서 동네의 모든 아이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물론 나도 그 중에 하나였다. 잔치가 거의 마무리 될 무렵 아주머니들이 동네 아이들을 위한 상을 크게 차리고 들어오라고 손짓을 하여 들어가면 평소에는 먹을 수 없던 사탕과 과자가 가득했다. 모두들한 자리씩 차지하고 앉아 이것저것 먹기에 바빴다. 국수를 먹으며 호주머니에 과자와 사탕을 담을 수 있는 만큼 담고 또 손에도 쥘 수 있는 만큼 쥐었다. 잔치가 끝나면 몇일 간은 풍성하게 지냈던 것으로 기억한다. 동네 친구끼리 나누어 먹거나 맛있는 것은 혼자 감추어 놓고 먹기도 하였다.

가까운 잔치집은 직접 가서 먹을 수 있었지만 어디인지도 모르는 곳에는 따라가지는 못했던 것 같다. 하지만 할머니께서는 갔다 오시면 꼭 먹을 것을 챙겨 가지고 오셨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마도 손자가 같이 지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분들이 특별히 신경을 써 주신 것 같다. 할머니께서 싸오신 음식 중에 특히 생선전과 떡을 좋아했었다. 떡 중에서는 색깔이 예쁘게 들어가 무지개떡을 특히 좋아했다. 그리고 꼭 가져오시는 것이 있었는데 지금은 보기도 어렵고 먹지도 않는 옥춘이라는 사탕 비슷한 것이었다. 먹으면 입에 빨갛게 물이 들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 때 당시에는 참 맛이 있었다. 음식을 많이 챙겨 오시지 못해서 그런지 적은 양을 먹으면 더 맛이 있었다. 어렸을 때의 관심은 오직 먹는 음식뿐이었던 같다.

기억에는 없지만 할머니의 말씀에 의하면 잔치집에 따라간 내가 잔치에 쓸 귤을 그 집 다락에 올라가 모두 먹어버렸다는 이야기를 해 주셨다. 아마 귤을 보기도 어렵고 맛보기도 어려운데 하나 맛을 보니 너무 맛이 있어서 모두 먹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당시에는 물질적으로는 넉넉하지는 못했지만 이웃간의 정과 훈훈한 인정은 많았었다. 삭막한 도시 생활을 계속하면 할수록 예전의 아름다운 것에 대한 그리움이 커진다. 잔치집에 관한 아름다운 기억을 가질 수 있어 커다란 행운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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