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작패기

얼마 전 한 방송프로그램에서 연탄과 장작을 비교하는 장면이 나왔다. 꽤 흥미로운 내용이었는데 갑자기 예전에 장작을 패 보았던 기억이 떠 올랐다.

내가 어렸을 때 살던 곳에서는 늦가을정도가 되면 겨울을 날 여러 가지 준비를 하였다. 그 중에 하나가 장작개비를 마련하여 부엌 뒤편 처마 밑에 쌓아놓는 일이었다. 어렸을 적에는 힘이 없었기 때문에 무거운 도끼를 들고 커다란 나무토막을 조각 낼 수는 없었다. 단지 할아버지께서 장작을 쪼개 놓으면 하나하나 가져 다가 키가 닿는 높이까지 쌓았던 기억이 난다.

고등학교 때 겨울방학이 되어 시골에 내려갔는데 길옆에 있는 커다란 참나무를 벤다고 할아버지께서 말씀하셨었다. 그냥 이유없이 베었던 것은 아니었던 것 같았는데 말씀하신 이유는 어찌된 일인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

할아버지께서는 큰 참나무를 베어 놓으시고는 톱으로 나무에 적당한 크기로 표시를 해 두셨다. 톱을 주시면서 기력이 없으니 잘라보라고 하셨다. 톱질을 조금 해 본 경험은 있었지만 그렇게 큰 나무를 베어본 적은 없어서 조심조심 톱질을 해서 잘라내었다. 할아버지께서는 톱날이 나무사이에 끼이게 되면 부러질 수도 있으니 조심하라고 말씀하셨다. 생각보다 참나무 조각의 무게가 상당히 나갔다. 조각을 낸 후에 외발 수레에 실어 마당 한쪽에 해가 잘 드는 곳에 며칠간 두었다.

며칠이 지난 뒤에 할아버지께서는 도끼를 가지고 장작을 패기 시작하셨다. 보기에는 쉬울 것 같아서 한번 해 보겠다고 말씀 드리고 나서 도끼를 잡았는데 생각보다 도끼자체도 무거웠다.

나무를 도끼로 내려쳤는데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생각한 지점을 정확히 치는 일도 처음에는 쉽지 않았다. 여러 번 내리치다 보니 요령이 생겨서 무조건 힘만 가지고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동그란 나무 조각을 일단 절반으로 쪼개고 그것을 다시 절반으로 쪼개는 식으로 장작을 패면 된다. 보아서 적당한 굵기로 장작을 만들면 되는 것이다. 처음에는 어렵다고 생각했는데 계속 하다 보니 익숙해 져서 커다란 나무 조각을 여러 개의 장작으로 만드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었다. 두세 번의 도끼질로 동그랗고 커다란 나무조각이 반 토막 날 때 그 기분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좋다. 모든 스트레스가 날아간다고 해야 할까?

장작을 패며 할아버지께 모든 나무가 이렇게 단단하면서 쪼개기가 어려운지 여쭈어 보았다. 미류나무가 제일 물러서 한방에 쪼개지고 밤나무가 제일 단단하고 그 다음으로 단단한 것이 참나무라고 하셨다. 그리고 장작마련이 꽤 번거로운 작업인데 그냥 나무나 짚을 많이 때면 되지 않냐고 여쭈어 보았더니 짚이나 솔가지를 아무리 많이 아궁이에 넣어도 겨울 밤 새벽녘까지 따뜻하려면 역시 장작이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참나무여서 그런지 장작을 패다보면 집게벌레라고 불렀던 사슴벌레의 유충이 많이 나왔다. 번데기의 형태로 참나무 안에서 지내고 따뜻해 지면 온전한 사슴벌레로 태어나는 것이다. 그렇게 단단한 참나무 안에 구멍을 만들어서 알을 낳고 번데기가 되는 것을 보니 사슴벌레도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참 장작을 패다가 보니 할아버지께서는 내가 어렸을 적 했던 것처럼 장작을 쌓는일을 하셨다. 그 모습을 보니 여러 가지 생각이 교차하였다. 안타깝고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시간의 흐름이 참 많은 것을 변화시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작을 처음 팬 다음날 일어나니 온몸이 두드려 맞은 것처럼 쑤셨다. 그래도 계속 장작패는 일을 했더니 몸이 쑤시는 것은 모두 사라졌다. 결국에는 베어놓은 참나무 전체를 모두 쪼개서 장작으로 만들었다. 풍성하게 쌓여 있는 장작을 보니 부자가 된 기분이었다. 아마 겨우내 쓸 연탄을 들여놓고 기분 좋아 하시던 어머니의 마음과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시간이 많이 지나고 다시 생각해 보니 커다란 나무를 도끼로 쪼개어 장작을 만드는 일은 참 색다른 경험이었다. 지금은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기억할 수 있는 아름다운 추억이 되어 내 가슴속에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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