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무신

얼마 전 한 식당에 갔더니 하얀 고무신이 있었다. 용도가 무엇일까 궁금했지만 요즈음에 도시에서는 보기 어려우니까 장식용으로 놓아둔 것으로 생각하였다. 나중에 점원에게 물어 보았더니 잠깐 밖에 나가는 손님을 위해서 준비한 것이라 하였다. 정말 오랜만에 잠깐 신어 보았는데 어렸을 적 일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내가 어렸을 적 살던 시골에서는 신발이라고 하면 여름에는 고무신 겨울에는 값싼 털신이 전부였다. 가끔 도시로 올라갈 때 신는 신발이 있었지만 기억을 못하는 것인지 신은 기억이 없다. 친구들과 놀다가 동네 어르신께서 나에게 “너의 할아버지가 새 고무신을 사가지고 오셨다”는 말을 듣고 신이 나서 뛰어간 적이 있었다. 정말 할아버지께서는 시장에서 새하얀 고무신과 사탕을 사가지고 오셨었다. 기뻐서 신어보았던 기억이 바로 어제 일어난 것처럼 항상 생생하게 떠오른다.

고무신은 단순한 신발이 아니었다. 세상의 어떤 신발이 고무신처럼 다양하게 사용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시냇가나 샘에서 놀 때에는 장난감 배가 되었다. 물에다 띄워 놓으면 시냇물의 흐름에 따라 이리저리 떠내려 갔다. 잘 지켜보고 있지 않으면 너무 빨리 떠내려가 버려 맨발로 열심히 뛰어 멀리까지 내려가 다시 고무신을 건져오는 일도 많았었다. 때로는 잡은 개구리나 올챙이 혹은 송사리를 태워 보내는 역할도 하였다. 작은 고무신안에 송사리를 한 마리나 두 마리를 넣어 노는 모습을 자세히 관찰하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싫증이 나면 다시 놓아주곤 하였다. 논이나 물가에서 물고기를 잡을 때는 물을 퍼내는 도구 역할도 하였다. 고무신을 두 손으로 들고 열심히 물을 퍼내고 흙탕물이 가라앉기를 기다려 작은 물고기를 잡았었다. 물을 퍼낸 후에는 잡은 송사리나 작은 붕어, 올챙이를 담아두기도 하였다. 고무신에 진흙을 붙여 여러 가지 모양을 만들기도 했던 기억이 난다. 놀이가 끝나고 나서는 고무신을 깨끗이 물에 씻은 뒤에 빨리 마르라고 노래를 불렀다. 시냇가에 친구들과 앉아 막대기로 땅을 쳐가며 노래를 불렀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오래된 불연속적인 작은 단위의 기억들이 고무신에 대한 추억을 조금씩 되살려 주고 있지만 더 이상 기억할 수 없는 수많은 이야기들이 더 존재할 것이다.

내가 어렸을 적 살던 곳에서 고무신을 마지막으로 신어본 것은 십년도 넘은 일이다. 도시에서 학교를 다녔던 나는 방학 때 내려가서 지내곤 하였다. 학교를 다니기 전 시골에서는 아무리 신고 다녀도 발이 아프다는 것을 느끼지 못하였다. 방학이 되어 몇 개월 만에 고무신을 신게 되면 처음에는 발이 많이 아팠다. 그만큼 편한고 안락한 생활에 적응이 되었다는 증거였다. 발바닥이 연해지는 만큼 순수한 마음, 아름다운 자연과 점점 멀어지는 것이었다.

지금은 내려갈 곳도 신을 고무신도 남아있지 않다. 다만 사라져가는 작은 기억들만 남아있을 뿐이다. 이 기억도 언젠가 사라질지 모른다. 아니,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나의 가슴속에 항상 자리하고 있으니까. 이제는 도시의 생활에 지친 나의 마음을 눈을 감으면 바로 어제의 일처럼 떠오르는 아름다운 고무신의 추억이 깨끗하게 씻어주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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